[028] 안녕 주정뱅이

「책 읽는 아빠」의 2022년 스물여덞 번째 독서
자타공인 애주가 소설가, 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은 '술'을 소재로 한 일곱 편의 단편소설집이다. 술은 인간의 역사와 동일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술은 사람의 관계를 맺어 주기도 하고 끊어 버리기도 한다. 권여선 작가도 여러 등장인물들과 술을 소재로 우리 삶의 단편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느 집안이나 술을 좋아하는 어른이 있고 술을 싫어하는 어른도 있다. 안주에 대한 예의도 있어야 한다.
권여선 작가의 말 마따라 술자리는 흥에 겨워 시작하지만 흥이 없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술자리는 내 뜻대로 시작되지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다 결국은 결핍을 남기고 끝난다. 술로 인한 희로애락의 도돌이표는 글을 쓸 때의 그것과 닮았다. '술'과 '설'은 모음의 배열만 바꿔놓은 꼴이다. 술을 마시기 위해 거짓 '설'을 연기하던 나는 어느덧 크게도 아니고 자그마하게 '설'을 푸는 소설가가 되었다."
그럼 몇 가지 인용해 본다.
<삼인행>
p.67
규, 취했으면 자빠져 자! 훈이 너도 자고.
훈이 양주를 병째 들어 마시고 내려놓았다.
(중략)
너도 진자 지겹다. 훈아.
나도 너희들 지겹다.
나도 나도! 나도 너희들 지겨워
<이모>
p.87
그에 대한 울분과 열등감 때문인지 몰라도 엄청난 술꾼이었는데, 술만 먹으면 사는 일이 비천하다고 고함을 질러대곤 했다. 욕을 하거나 난동을 부르지 않고 오로지, 사는 일이 이렇게 비천하다, 비천해, 하고 외칠뿐이었다.
<역광>
p.143
그들은 전체적으로 견딜 수 없이 고집 세고 지루한 인물들의 진열장이었지만 개별적으로는 각자 고귀해 보였다. 그 고귀함은 시간을 감내하는 고독의 능력으로 빛이 났다. 그러니 그녀고 그렇게 고독하게 견뎌야만 했다.
p.159
어디 경치 좋은 정자 밑으로 몰려가 막걸리를 한잔씩 마시면서, 지나가던 우리도 같이 불러 한잔씩 돌리면서, 다들 뭐하는 사람들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묻고 답하는 광경을 상상했습니다. 저는 이런 우연한 조우, 스치듯 지나가는 길 위에서의 인연을 무척 좋아합니다. 지나가는 여인에게 연정을 느낀 보들레르처럼 말이지요.
p.164
그래서 말인데요. 안주에 대한 예의로 일단 소주나 막걸리로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선생님을 뭘로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