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이만큼 가까이
「책 읽는 아빠」의 2022년 쉰아홉 번째 독서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정세랑 작가의 팬이 되었다. <이만큼 가까이>는 정 작가의 소설 중 <피프티 피플>에 이어 세 번째 읽는 책이다. 정세랑 작가는 파주와 일산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여섯 명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인물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여러 경험과 갈등을 섬세하면서도 경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그녀에 숨길 수 없는 명랑의 피가 흐름을 눈치챘다. 그녀를 통과하면 어떤 이야기도 얼마쯤은 반짝거리게 되어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이 떠올랐다. 은희경 작가가 소녀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썼다면, 정세랑 작가는 청소년이 삼십대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썼다고 말할 수 있다. 어른이 되었지만 감수성이 풍부했던 청소년 시절의 느낌과 경험, 특히 친한 친구의 죽음과 부재를 견뎌내는 모습 등에서 청소년 성장 소설이자 어른을 위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잠시나마 훌쩍 지나가버린 나의 20대 시절이 떠올랐다. 젊음이라는 무기를 갖고 씩씩하게 살아갔던 나의 20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책을 더 많이 읽을 것이다. 그만큼 40대의 나에게 책은 나의 스승이자 벗이다. 그럼 정세랑 작가의 주옥같은 글을 인용해 본다.
p. 94
그렇구나. 자칫 잘못하면 인생이란 거 아주 쉽게 비루해지는구나. 아니, 웬만해서는 비루함을 피할 수 없구나.
p.156
"뭔가 좀 잘못 걸린 것 같아. 안 맞는 사람들한테 걸린 것 같아. 다른 데 갔더라면 괜찮았을까. 내가 문제인가."
p.159
친구들은 수긍했다.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하던 애가 껍데기까지 일단 안고 가자고 말하게 된 것이 성장일지 타협일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p.197
찬겸이는 열몇 살 때 이렇게 살겠다, 정한 대로 정말 살아가고 있다. 아무것도 강탈당하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 말이다. 아직 목적직에 닿지는 않았지만 처음 설정한 그 방향 그대로 순항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
p.257
아무도 깨어 있지 않은 시간에 나만 깨어서 영상들을 돌려보면 영상 속의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나 언젠가 이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거야'하고 일찍 예감한 것 같은 표정들을 지었다. 현재를 살면서 아직 오지 않은 그리움을 먼저 아는 종자들이 특이하게 느껴졌지만, 내 주변엔 그런 이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