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아버지의 해방일지
「책 읽는 아빠」의 2022년 일흔 번째 독서
요즘 베스트셀러이길래 한번 읽어봤는데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정지아 작가라는 보물도 발견하였다. 올해 읽은 소설 중 2개를 꼽으라면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시선으로부터,>를 주저 없이 꼽는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아버지의 죽음 후 장례식에서 사흘간 아버지의 삶에 대한 이야기라면 <시선으로부터,>는 돌아가신 어머니 제사를 준비하면서 어머니의 삶을 반추하는 이야기다. 정지아 작가와 정세랑 작가가 같은 모티브로 쓴 것일까 궁금하다. 하지만, 정지아 작가는 실제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책을 썼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빨치산의 딸로 태어난 설움을 이야기하지만 환갑을 앞두고서야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용서를 구한다. 그래서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친다고 말한다.
정지아 작가는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민족 분단이라는 슬픔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어느 가정에나 있을법한 이야기를 소설로 그려냈다.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는 무거운 주제를 아버지의 장례식을 소재로 가볍게 풀어내고 있다. 그것도 걸쭉한 전라남도 사투리로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전남 구례에 있는 기분이 들 정도다.
이 책은 수십 년 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하여 스스로 '빨갱이'가 된 아버지의 이야기다. 빨치산 아버지는 위대한 혁명의 길을 걷다 공산주의 패배로 인해 자본주의 남한에서 쥐 죽은 듯이 살아야만 했다. 연좌제라는 명목으로 일가친척들까지 고통을 받았다. 물론 가장 고통을 받은 이는 아버지의 딸이다. 딸의 시선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이 장례식을 거치는 동안 어머니, 남동생, 조카, 친구, 혁명 동지 등의 시선에서 아버지의 모습으로 확대된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라는 의문도 든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나는 여러 사연들을 통해 빨갱이로서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게 아버지의 참모습이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그럼 소설의 주제를 잘 나타내는 일부를 인용해 본다.
p.61
아버지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버지는 서늘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노려보더니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자네 혼차 잘 묵고 잘살자고 지리산서 그 고생을 했는가? 자네는 대체 멋을 위해서 목심을 건 것이여!"
p.198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p.201
아버지는 나의 우주였다. 그런 존재를, 저 육신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을 점령하고 있는 저 육신이 내일이면 몇 줌의 먼지로 화할 것이다.
p.224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해가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응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