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공정하다는 착각
「책 읽는 아빠」의 2024년 열한 번째 독서
이 책의 원제는 <능력의 폭압>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능력주의를 여러 사례를 들어 비판한다 하지만 유명한 그의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에서처럼 구체적인 해결책보다는 나아갈 방향만 제시한다.
능력주의(Meritocracy)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상이다. 신분이나 재산이 아니라 노력과 재능을 기준으로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능력주의에 의문을 품게 된 배경은 2016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다. 최근 수십 년간 미국에서는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풍조가 더욱 심해지며 소득과 부의 불균형이 악화되었다. 특히 오바마 힐러리 등 민주당 후보들은 노력하면 뭐든지 된다는 능력주의를 강화했다. 이에 대해 저학력 노동자들이나 학벌이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고 양극화에 대한 분노와 적의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기반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이 되었던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을 스스로 일궈낸 성과이자 능력의 척도라고 믿는다. 그래서 시장이 승자에게 주는 보상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만약 성공을 온전히 자신이 이룬 것이라고 믿는다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사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뒤처지는 사람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주의 원칙에서는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승자가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승자는 자신이 성공한 자격이 있다고 믿게 되었고 자신보다 운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한다 이를 엘리트의 능력주의적 오만이라고 한다. 능력이 능력주의로 변하는 순간 능력은 폭압이 된다. 왜냐하면 능력주의가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실패할 때마다 스스로 자신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심리적 측면이다.
물론 능력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이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가정이 부유한 지 가난한지 공부를 장려하는지 무관심한지 등에 따라 달라진다. 즉 능력을 얻으려는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충분치 않다 노력은 성공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타고난 재능 누군가의 도움으로 얻은 재능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스스로 얻은 게 아니다. 즉 능력을 스스로 얻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능력 있는 사람들이 보상을 모두 독차지할 자격은 없다. 그 대신 재능을 통해 얻은 이득을 다른 사람과 나눌 의무가 있다. 능력주의의 폭압에 저항하려면 다양한 형태의 일을 더욱 인정해야 한다.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의 일을 더욱 대우하고 존중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성공에서 운의 역할을 더 많이 인정해야 한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행운에 감사하면 겸손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겸손은 우리를 서로 갈라놓았던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다. 또한 겸손은 우리가 동료 시민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게 한다. 결국 겸손은 공동선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