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빠」의 2022년 열세 번째 독서
코로나가 선사하는 일상의 잠시 멈춤을 소설로 이겨내고 있다. 오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은희경 작가의 책이다. 책을 펼치자 '장미의 이름은 장미, 당신의 이름은 당신' 이라는 작가의 친필이 쓰여 있다. 그동안 몰랐지만 은희경 작가는 '고독'을 주제로 글을 쓴다. 최근 인터뷰에서 은희경 작가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하는 것이 문학"이라고 말한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4편의 소설집이다. 인문학 서적 보다는 경제경영이나 자기계발 서적을 주로 읽은 나에게는 소설 속의 생생한 감정의 묘사들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 작가는 그 상황에서 나도 느꼈을만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말마따나 사람들이 고독 속에서 연대하기를 바라는 느낌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에 와닿은 구절을 가져와 본다.
p.75
"여기서 혼자 오래 살다보면 그냥 친절한 건지 특별한 감정인지 잘 구별 못하게 돼. 자기들끼리 선을 그어놓고 그 바깥에 있는 사람한테 친절하게 보이려는 사람들이 좀 있거든." 승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디 살든 다 마찬가지 같아." 다음 순간 승아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그럴 때면 말야. 왜 얼마 동안 어디에를 생각해봐. 거기에 대답만 잘하면 문을 통과할 수 있어"
- <우리는 왜 얼마동안 어디에> 중에서
p.101
"나는 지금 셰익스피어 가든의 꽃 핀 장미 앞에 서 있는 너를 상상해봤어."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나를 향해 있었다. "나는 알 수 있어. 그것은 아름다운 풍경일 거야"
- <장미의 이름은 장미>
사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수진과 마마두의 애틋한 감정이 연결되지 않는 이유를 찾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은희경 작가의 인터뷰는 이를 명확히 알려 준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이혼 후 홀로 어학연수를 떠난 마흔여섯 살의 수진이 어학원에서 세네갈 흑인 청년 마마두를 만난 이야기다. 짧은 영어지만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이 통할 것 같았던 그들은 어느 순간 소원해진다. 은 작가는 “학교 안에서 학생 대 학생으로 만날 땐 괜찮았지만, 밖으로 나가 타인의 시선 속에 놓이자 수진의 흑인에 대한 편견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속 대사 “이름이란 무엇인가,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향기로운 것은 마찬가지인데”에서 따왔다. 마마두는 편견 없이 수진을 보지만, 수진은 그렇지 못했다. 결국 이 소설은 고독한 인간이 소통을 바라지만 선입견과 편견에 가로막힌 이야기다. 다만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말미에 느껴진다. ‘나의 미래’를 주제로 한 글짓기 시간에 마마두는 자신의 고향을 찾아온 수진의 모습을 그린다. 한국으로 돌아온 수진은 마마두 고향의 풍경을 상상해본다. 마마두의 글처럼 문학이 사람들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희망을 품게 하는 대목이다.
- 은희경 작가 한국경제신문 인터뷰 2022.2.9
p.173
그러나 차례가 된 현주가 사과를 가리키다 레이철은 무표정하게 사과 한 알을 집어 그것을 곧바로 현주의 샌드위치가 든 종이봉투 속에 떨어뜨렸다. (중략) 말은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현주도 말없이 신용카드를 건넸다. 관광객은 열린 문 밖에 선 채로 피상적인 환대를 받는다. 그러나 관광객도 계급이 나뉘며 그 편견이 작동하면 이방인에게는 그마저도 적용되지 않는다.
-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p.180
이곳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하지만 문이 하도 많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도시, 언제까지나 타인을 여행객으로 대하고 이방인으로 만드는 도시였다. 처음에는 환대하는 듯하다가 이쪽에서 손을 내밀기 시작하면 정색을 하고 물러나는 낯선 얼굴의 연인 같았다.
-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p.249
그러나 여행이란 죽음의 예행연습이라는 어머니의 말은 잊히지 않는다. 그 여행 내내 어머니는 검은색 수첩을 갖고 다녔고 그 안에는 빛바랜 내 신춘문예 당선 기사가 간직돼 있었다. 코니아일랜드에 함께 갔던 여성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 수첩은 이제 내가 갖게 되었다.
- <아가씨 유정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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