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애독자 여러분
「매년 100권 독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책 읽는 아빠'입니다.
요즘 소설에 푹 빠져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을 '차분하게 응축'하는 달로 정했기 때문에 송년회 일정을 최소한으로만 잡고 남는 시간은 독서로 보내고 있습니다. 2021년에 읽는 10번째 소설이자 95번째 책으로 <밝은 밤>을 선택했습니다. 그럼 감상평을 적어 보겠습니다.
최은영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2018년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는 책이다. 회사 독서 모임의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는데 여성 특유의 심리 묘사가 뛰어난 소설이었다. <밝은 밤>은 친한 동생의 추천으로 자료실에서 빌리게 되었고 아내가 먼저 읽었다. 아내는 재미는 있는데 내 취향은 아닐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까지 몇 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책장을 펼치자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 소설에서는 두 개의 시간이 존재한다. 주인공인 내가 사는 시대와 주인공의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살던 시대. 또한 두 개의 관계가 존재한다. 수평적인 관계와 수직적인 관계. 증조할머니인 삼천과 그녀의 이웃인 새비의 우정이 수평적인 관계라면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사랑은 수직적인 관계이다. 우정은 피가 안 섞인 남이기에 서로 조심하고 주고받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갈등이 깊어지지 않고 견고하게 지속될 수 있다. 반면에 사랑은, 특히 가족 관계 내에서의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이라 상처가 생기기 쉽다. 윗사람은 줘야만 하고 아랫사람은 받기만 기대한다. 그러기 때문에 가족 관계에서 생각보다 쉽게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최은영 작가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기쁨과 슬픔, 상처와 환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증조할머니와 주인공의 시대는 무려 100년이라는 시간의 갭이 존재하지만 사랑과 갈등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것이다. 자식은 항상 부모에게 상처를 준다. 증조할머니는 그녀의 엄마를 버리고 신랑을 따라 개성에 갔다. 주인공도 엄마의 성장 환경과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엄마에게 막말을 쏟아냈다. 물론 엄마도 주인공에게 상처를 준다.
"넌 나한테 할말이 그런 것밖에 없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거야. 과거는 끝난 일이야. 자꾸 들여다봐서 뭐해. 미래를 봐야지. 넌 어릴 때부터 이미 지난 일을 곱씹는 버릇이 있었어. 그래서 자꾸 없는 것도 보고......"
p.188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p.134
그래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상처를 준 사람들이 항상 후회를 하고 용서를 구한다는 점이다.
"삼천아, 잘 먹고 잘 자고 있지. 너를 생각하면 내가 너에게 소리 지르고 나쁘게 말하던 게 자꾸만 떠오른다. (중략) 인제 와서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갔니. 미안해. 삼천아"
p.119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저 내 말을 들어주고 내 편이 되어 달라는 것이다. 내 감정을 같이 느끼자는 것이다.
"착하게 살아라. 말 곱게 해라. 울지 마라. 말대답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싸우지 마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런 얘길 들어서 난 내가 화가 나도 슬퍼도 죄책감이 들어. 감정이 소화가 안 되기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감정이 있어"
p.278
자식들은 언제나 부모를 이해하지 못 한다.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면 되는 거야' 아는 그 말을 하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중략) 나는 그런 마음을 얼마나 경멸했었나. 그런 마음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 쳐야 했었나.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엄마가 나는 미웠다. 그린 식의 굴욕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 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처럼 당당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놓아봤고 그 질문에 분명히 답할 수 없었다.
p.314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반성하기도 한다.
안정을 추구했던 그 시간동안 나는 성장하지 못했다. 독에 갇힌 나무처럼 가지를 마음껏 뻗어나갈 수가 없었다. 고립되었다. (중략) 나는 누구에게 거짓말을 했나. 나에게, 내 인생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알고 싶지 않아서. 느끼고 싶지 않아서.
p.299
일요일 하루를 온전히 <밝은 밤>에 빠져 살았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삼천이가 되기도 했다. 독일에 간 희자가 되기도 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엄마 생각도 많이 났다. 보고 싶다. 엄마와 할머니가.
이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남자들이 모두 이기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로만 묘사된다는 점이다. 증조부도 그랬고 할머니와 중혼한 길남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도 조카의 결혼식장에서 화를 내는 부족한 사람으로 나오고 주인공의 남편도 바람을 펴서 이혼 사유를 제공한 배우자로 나온다. 그러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 상황이 보다 자세하게 묘사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물론 그 남자들은 우리에게 반면교사라는 교훈을 제공한다. 그런 남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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