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빠」의 2022년 쉰다섯 번째 독서
소설 <시선으로부터,>를 통해 알게 된 정세랑 작가. 필자는 어느덧 그녀의 팬이 되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은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 책은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 한다. 정세랑 작가는 이 소설에서 누구나 겪었을 법한 고교 시절의 여러 가지 일들을 그려내고 있다. 귀신 잡는 보건교사 안은영과 사립학교 설립자 가족인 홍인표가 학교에서 발생하는 신기한 일들을 함께 헤쳐나간다. 등장하는 교사와 학생들 모두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봤을 정도로 생생한 묘사가 일품이다.
필자에게는 30여 년 전이지만 고등학교에는 언제나 재미있는 친구들과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학교 지하실에 귀신이 있다는 이야기도 누구에게나 개연성이 높은 신기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오로지 쾌감을 위해 썼다고는 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뿐만 아니라 사춘기 고등학생들이 느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인간관계 사이에서의 갈등 같은 것들도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일주일 동안 나도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럼 정세랑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몇 개 인용해 본다.
p.109
인표는 술을 싫어했다. 정확히 술이 싫다기보다는 만취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p.110차라리 집에 가서 <사기 열전>을 정독하며 인물 보는 눈을 기르는 게 낫겠다. 가볍게 마시고 아름다운 원전을 읽는 일은 얼마나 운치 있는지. 그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파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p.189"비싸서 그래. 사람보다 크레인이. 그래서 낡은 크레인을 계속 쓰는 거야. 검사를 하긴 하는데 무조건 통과더라."사람보다 다른 것들이 비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값없게 느껴졌다.
p.205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은 어째서 시대가 바뀌어도 이렇게 늘 재미가 없을까. 교장 선생님 대상으로 누군가 재미있게 말하기 연수 프로그램을 좀 짜든가. 그도 아니면 짧게 말하기라도 하도록 방침이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은영은 투덜거렸다. 어쩌면 웬만해선 재미있는 사람들이 교장이 못 되는 건지도 모른다. 드물긴 해도 어딘가에는 분명 재밌는 교장 선생님이 있는 학교가 있을 텐데 다음번에 취직할 때는 알아보고 해야겠다.
p.233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선거에서 뽑히나요? 왜 좋은 방향으로 일어났던 변화들이 무산되나요? (중략)"있잖아. 다음 선거에는 너희들한테도 선거권이 있어"대흥의 설명을, 어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를 특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끄트머리에 그렇게 덧붙여 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아이의 눈 안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대흥은 그 반짝임 때문에 늘 희망을 얻었다. 뒤에 오는 이들은 언제나 더 똑똑해. 이 아이들이라면 우리보다 훨씬 나을 거야. 그러니까 그 바보 같은 교과서를 막길 잘했어.
p.253광개토대왕비를 흉내 낸 모양에 고전적인 서체로 '성실, 겸손, 인내'라고 쓰여 있었다. 셋을 합하면 결국 '복종'이 아닌가. 은영은 늘 끌끌 혀를 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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