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빠」의 2023년 마흔일곱 번째 독서
1984년생 정세랑 작가는 동년배인 최은영 작가와 더불어 84년생 대표 작가다. 고려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정세랑 작가는 편집자로 일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0년에 등단하였으며 초반에는 주로 SF 장르 소설 위주로 집필했고 점차 순수 문학으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2015년 발간된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2020년에 발표한 <시선으로부터,>는 그녀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로 올린 작품이다.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SF 장르의 단편소설 8편을 모아놓은 단편소설집이다. 원래 SF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큰 기대를 안 했지만 이 중 두 편은 재미와 작품성이 빼어나다.
<리틀 베이비블루 필>은 HBL1238이라는 신약에 중독된 인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약은 마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나오는 '소마'와 같다. HBL1238은 원래 뇌의 해마 부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사람이 3시간 정도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약이다. 즉 알츠하이머 같은 치매 환자들을 위한 약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험을 보기 전이나 중요한 연구 등을 하기 전에 약을 복용했다. 인류는 이 약을 마치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며 매일 복용했다. 사람들은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이 약에 중독되었다. 결국 이 약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같은 세상이 된 것이다. "그 약의 유일한 부작용은 부작용이 없는 것이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의 설정도 흥미롭다. 정세랑 작가는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특별판 편집을 맡으면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작가는 상상 속의 수용소의 모습을 그렸다. 학교 선생님인 주인공은 목소리 때문에 수용소에 수감된다. 그의 죄는 목소리가 살인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제자 16명이 나중에 살인범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정 당국은 글에게 성대 제거수술을 받으라고 한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유해함을 기꺼이 제거하기로 동의한다.
정세랑 작가는 더 많은 존재들을 존엄과 존중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역사가 발전하리라 믿는다고 한다. 그럼 작가의 말로 마무리한다.
"나는 23세기 사람들이 21세기 사람들을 역겨워할까봐 두렵다. 지금의 우리가 19세기와 20세기의 폭력을 역겨워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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