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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1-02] 파친코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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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토끼 해의 첫 책으로 소설을 선택했다. 작년에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는 애플 TV의 <파친코>였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유명하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처음에는 역사소설도 아닌데 왜 저렇게 무거운 문장으로 시작하나 의문을 품었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역사 소설이 맞다. 나라를 잃은 유랑민으로서 타국에서 차별과 학대를 받으면서 꼿꼿하게 살아가는 조선인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부산 영도에서 시작하여 일본과 미국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배경과 여러 등장인물들이 조선인의 아픈 역사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이민진 작가는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1.5세대다. 그녀는 미국식 이름을 쓰지 않고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이민진 작가는 일요일도 없이 일하는 부모의 뒷바라지는 받으며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하여 변호사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되어 어렸을 때 재능을 보이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계 미국인 남편을 따라 도쿄에서 4년간 살면서 재일교포들의 삶의 애환을 알 수 있었고 이후 다양한 취재와 연구를 통해 이 소설을 완성했다. 

 

구한말의 역사가 강대국의 침략과 수탈로 고통스럽고 복잡한 것처럼 주인공 가족의 가계도로 슬프다. 10대 소녀 선자는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게 되어 아들 노아를 낳는다. 젊은 목사 이삭은 이런 선자와 결혼하고 일본으로 떠난다. 둘 사이에서 모자수라는 아들이 태어나고 모자수는 솔로몬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책을 읽은 내내 책의 제목이 왜 파친코일까 생각이 들었다. 노아와 모자수가 모두 파친코 사업을 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국적을 얻을 수 없던 재일교포들은 온갖 차별 때문에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공무원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파친코 같은 어둠의 산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파친코는 재일교포들에게 경제적 신분 상승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다행스럽게 노아와 모자수는 파친코 사업을 하는 관리자이자 사업가로서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수많은 재일교포들은 굶주림 속에 살아간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재일교포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조총련과 민단으로 구분된다는 정도만 알았지 이 정도로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는 것을 몰랐었다. 이 소설이 재일교포 대부분의 삶을 표현하지는 못한다. 노아와 모자수 모두 어렵게 자랐지만 이후 부단한 노력을 통해 경제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파친코>는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사랑 그리고 돈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룬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 모습인지에 대해서도 말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한반도를 떠났지만 언제나 고향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모든 한민족의 역사다. 

 

책을 읽는내내 대하 역사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몇 가지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다. 한국인인 고한수가 어떻게 일본 야쿠자의 사위가 되었는지, 노아는 선자를 만난 직후 왜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지에 대해 명쾌한 설명이 없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야한 장면들도 소설 전체의 맥락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친코>는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이 책은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도박 같은 재일교포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역사와 정치가들이 국민들을 망쳐도 국민들은 고난을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이 소설은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이 책은 희망과 극복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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